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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한국전쟁 영웅 10명, 삼성, LG 맨해튼 광고

[전략_노트]/[미국_전략]

by S부장_미래전략 2023. 4. 27.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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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한국전쟁 영웅 10명, 삼성, LG 맨해튼 광고

 

한국전쟁 3년간 한국 및 미국 주도의 UN군은 150만명이 전사, 실종, 부상 및 포로 가 되었고, 북한 및 중공군도 비슷한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했지요.

 

군인 및 민간인을 합쳐서, 사망자가 3백만명으로 엄청난 대량 살상이 벌어진 전쟁으로, 당시 한국 및 북한 인구가 대략 3천만이었으므로, 거의 10%가 인명 피해를 입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또한, UN 16개국 이외에 비군사 지원을 제공한 20여개국 및 북한을 지원한 중국 및 소련까지 합치면, 거의 30여개국이 참전한 국제 규모의 전쟁이었지요. 

 

한국에서는 625전쟁 또는 한국전쟁을 통칭하지만, 북한은 조국해방전쟁, 일본은 조선전쟁, 중국은 항미원조전쟁 抗美援朝战争 으로 부르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한국전쟁 Korean War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바로 벌이지기도 하고, 화제성에서 베트남 전쟁에 밀리다보니, 미국 및 서구 국가에는 잊혀진 전쟁 (The Forgotten War) 또는 알려지지 않은 전쟁 (The Unknown War)로 불리기도 하네요.

 

미국은 3년간 병력 48만명을 참전시켰는데, 이 중 미군이 13만7천 명이 피해를 입었지요.

 

한국전쟁 미군 피해 현황 

36,574명 전사
103,284명 부상
3737명 실종
4439명 포로
총계 137,250명 

 

 

한국전쟁의 영웅은 10명 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자유를 위해서 머나먼 나라를 찾아와서 목숨을 걸고 싸워준 미국 군인 전체와 UN 16개국 및 비군사 지원을 해준 50여개국 국가 전체입니다.

 

 

UN군 사령부 참전국 및 파병규모

 

  • 대한민국 국군 1,090,911 명
  • 미국 480,000명
  • 영국 56,000명
  • 프랑스 3,421명
  • 오스트레일리아 8,407명
  • 뉴질랜드 3,794명
  • 캐나다 25,687명
  • 네덜란드 5,322명
  • 필리핀 7,420명
  • 터키 14,936명
  • 콜롬비아 5,100명
  • 벨기에 3,498명
  • 태국 6,326명
  • 그리스  4,992명
  • 에티오피아  3,518명
  • 남아프리카 연방 826명
  • 룩셈부르크 83명
  • 노르웨이 623명
  • 이탈리아 128명
  • 스웨덴 1,124명
  • 덴마크 630명
  • 인도 627명

 

  • 총계: 1,719,579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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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23년 4월 21일 기사>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북한군이 낙동강 방어선까지 쳐들어와 패전의 위기에 처했을 때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서울을 수복, 대한민국을 구했다. 그는 당시 성공률이 “5000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라며 미 합참·해군이 모두 반대했던 작전을 성공시켰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참전한 ‘부자(父子) 영웅’도 있다. 밴 플리트 장군은 1951년 4월 미 8군 사령관으로 한국에 파견됐다. 참모들이 “승산이 없는 전쟁이니 도쿄로 철수하자”고 했지만, “나는 승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며 전선을 지켰다. 아들 제임스 밴 플리트 2세는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1952년 4월 임무 수행 중 대공포 공격을 받고 실종됐다. 플리트 장군은 “추가 인명 손실이 우려된다”며 아들 수색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또 다른 부자(父子) 영웅인 윌리엄 쇼도 아들을 전장에서 잃었다. 그는 1920년 한국에 온 선교사로, 전쟁이 터지자 60세의 고령에 자원 입대해 미 군목이 됐다. 아들 윌리엄 해밀턴 쇼는 미 해군 정보 장교로 맥아더 장군의 서울수복작전을 돕다 총탄을 맞고 28세에 전사했다.

 

딘 헤스 공군 대령은 1950년 7월 대구로 파병돼 1년여 동안 250회의 전투 출격으로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고 임무를 수행했다. 중공군의 진격으로 서울이 위험에 처했던 1·4 후퇴 때 전쟁 고아 950명을 구출해 제주도로 피난시키기도 했다.

 

랠프 퍼켓 주니어 육군 대령은 1950년 11월, 청천강 북쪽의 전략적 요충지인 205고지 점령 당시 중공군의 수류탄에 맞고도 작전을 지휘했다. 심각한 부상으로 움직일 수 없자, 대원들에게 자신을 남겨두고 떠날 것을 명령한 ‘참군인’이었다.

 

김영옥 미 육군 대령은 재미교포로 제2차 세계대전 참전 후 전역했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 “부모님의 나라를 구하겠다”며 미군 예비역 대위로 자원 입대했다. 1951년 5월 구만산·탑골 전투와 금병산 전투에 참전해 사기가 떨어진 부대원을 독려해 승리로 이끌었다.

 

백선엽 장군은 6·25전쟁에서 국군 제1사단을 지휘, 다부동 전투에서 미군과 함께 북한군 3개 사단을 격멸했다.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쏘고 가라”는 말로 임전무퇴의 정신을 실천했다.

 

김두만 공군 대장은 6·25전쟁 중 대한민국 공군 최초로 100회 출격을 달성했다. 미 공군이 500회 출격으로도 폭파하지 못한 승호리 철교를 저고도 폭격 14회 만에 폭파, 적 후방 보급의 요충지를 차단했다.

 

김동석 육군 대령은 1950년 9월, 미 8군 정보 연락장교로 서울 탈환 작전을 위한 결정적인 적군 정보를 수집해 UN군사령부에 제공했다.

 

박정모 해병대 대령은 서울 탈환 작전 시 소대원을 인솔해 시가전을 전개하고 중앙청(당시 정부청사)에 인공기를 걷어내고 태극기를 게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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