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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과 위대한 신앙의 증거자

[가톨릭_노트]/[가톨릭_교리]

by S부장_미래전략 2022. 11. 9.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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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말씀:  로마 8,31-39

 

하느님의 사랑과 믿는 이들의 확신
31
그렇다면 우리가 이와 관련하여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궁금해요

 

  • 한국천주교회 역사

천주교는 한문으로 번역되고 저술된 천주교 서적을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고, 이를 학문으로 연구하던 남인 학자들 사이에 천주교 신앙이 싹텄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었던 이승훈은 1784년 중국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수표교 인근에 있던 이벽의 집에서 김범우, 이벽, 이존창, 지홍, 최인길, 최창현 등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나라에 비로소 신앙 공동체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늘어가는 신자들로 모임 장소였던 이벽의 집이 비좁아지자, 그 해 겨울부터는 명례방(지금의 명동)에 있던 김범우의 집에서 집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인 1785년 명례방 집회가 박해를 받으면서, 이후 한국 천주교회는 신유박해(1801년)를 비롯한 크고 작은 박해로 혹독한 시련의 시기를 지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선조들은 이러한 시련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복음을 전파하는 한편, 늘어가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돌볼 성직자를 맞아들이고자 쉼 없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마침내 1831년 9월 9일,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조선대목구를 설정했고, 조선에서의 전교와 사목을 파리 외방 전교회에 맡기게 됩니다.

 

 

 

 

4대 박해 이야기

신유박해 1801년 1784년 탄생한 가톨릭교 신앙 공동체는 ‘진산사건’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1795년 중국인 주문모 신부님의 조선 입국 이후 교세가 크게 확대되었고, 1800년 무렵에 이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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